지식산업센터
“노후 대책이었지요. 금리는 낮고, 부동산은 올랐어요.”
대졸, 25년차 직장인 H씨(50세). 월급 750만원(세전).
배우자 W씨(48세)는 20년차 공무원. 세 자녀 가정. 월급 450만원(세전).
H씨는 부동산 투자로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 12채를 분양 받았다.
“2019년 말 경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주택담보대출 제한,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강화)으로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어려워졌습니다. 시장에서는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으로 투자흐름이 변경되었습니다.”
“홍보관에서는 저금리 기조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취득세, 재산세 감면 받을 수 있고, 대출도 분양가 대비 최대 80%까지 가능하다고 홍보하였습니다.”
계약금은 저축했던 돈에 대출을 받아 냈다. 중도금, 잔금은 시행자 대출로 처리하고, 어쩌면 피 받고 전매하리라. 부가세환급을 받으려고 물건 별로 임대사업자등록도 했다.
H씨 뿐이랴. 비슷한 사람들 많이 있다. 오죽하면 ‘지산’이라는 약칭까지 널리 퍼졌으랴.
재무 종사자들이 레버리지효과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뭔가 있어 보인다. 별 것 없다.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하면 수익률이 증폭된다.
10원짜리 지산을 사서 임대료를 4천만원을 받는다면 투자수익은 4%이다. 그 중 5억원을 2%의 이자로 빌린 것이라면 은행에 1천만원 이자 주고 남은 3천만원은 내 것이 된다. 내 돈 수익률은 6%.
빌린 돈이 많을수록 내 돈의 수익률은 커진다. 대출을 8억원까지 늘려보자. 임대료 4천만원 받아 이자 1천6백만원을 주면 2천4백만원 남는다. 내 돈은 2억원이니 내 수익률은 12%.
지산 값이 오르면 더 매력적이다. 대출 8억 끼고 10억에 분양 받은 지산을 12억에 넘기면 대출 8억 갚고도 4억이 남는다. 내 돈 원금 2억 빼고 2억이 순수익. 100%가 남는 장사다.
그런데,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가. 레버리지 효과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임대가 나가지 않고, 지산 값도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대출 8억 끼고 10억에 분양 받은 지산 값이 6억으로 떨어질 수 있다. 6억에 팔면 내 돈 2억은 회수할 수 없고, 8억원 대출 갚으려면 2억원을 보태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마련하기 힘든 돈이다. 이런게 12건이라면 당연히 파산이다.
“최근 지산에 대한 대출 규제도 강화되고 금리도 오르면서 지산 분양 및 거래가 동결되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하면서, 많은 물량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따라 저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기 어려워지면서 분양대금의 잔금을 치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잔금 납부가 완료된 부동산을 처분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거래가 되지 않아 지산과 관련된 채무를 변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H씨)
파산은 가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우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제 명의로도 지산을 분양 받으면서 저도 파탄하였고 가정이 몰락하였습니다. 일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며 벌어들인 소득으로 장만한 집마저 채권자들에게 빼앗기며 가족 전체가 오갈데 없이 쫓겨날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치매 병력 있는 모친마저 포기하고 생을 마감하려다 실패하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배우자 W씨)
하늘 아래 새로운 현상은 별로 없다. 제임스 윌슨은 독립선언서와 연방헌법 양쪽에 다 서명한 미국의 초대 연방 대법관이었다. 1790년대 서부 개발의 열풍 와중에 부채를 얻어 토지 투자를 했다. 경기침체와 토지가격 폭락으로 막대한 채무를 졌다. 채권자들을 피해 도피했다가 체포되어 채무자 감옥에 구금되었다. 발자크도 인쇄, 출판에서 시작하여 토지개발 사업을 운영하다가 과잉투자와 경기 악화로 사업이 무너져 막대한 채무를 떠안고 평생 채권자들을 피해 다니며 작품을 써야 했다. 렘브란트도 고가의 주택과 작품 수집을 위해 빚을 졌다가 파산하여 모든 것을 경매처분 당했고 차명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현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신용경제사회는 끊임없이 파산자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 다 채무자감옥으로 보내다가는 아무도 기업활동과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을 깨달은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1997년의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파산제도를 정비해 나가고 있고, 2006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정한 이후 회생 및 파산 실무가 채무자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정직하고 성실한 채무자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채권자들을 위하여 내 놓고 절차에 협조하는 한, 종국적으로 과거의 부채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H씨는 회생절차를 신청하였다. 일부 지산에 대하여는 분양계약을 해지하였고, 향후 처분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것으로 계획을 제출하였다. 금융기관 채권자는 거의 동의하였는데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임차인으로 인하여 가결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회생절차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필자의 조언에 의하여 H씨는 파산절차로 이행하였다. 그 이후에 벌어들이는 소득은 H씨의 것이므로 아직 공식적인 면책은 나지 않았지만 마음 편하게 직장에 다니고 있다. W씨도 회생절차,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하였으나 기술적 요건에 맞지 않아 실패하고, 공무원이 파산절차를 선뜻 선택하기는 내키지 않아 주저하고 있지만, 나름 마음의 안정을 얻고 일상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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