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건

– 어느 로컬 변호사의 출국금지 체험기

후배 변호사들과 모의한 여행이다. 중국 난징에 3박4일 다녀오기로 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로컬 변호사 좋은 점이 여행 외에 무엇이 있나. 고객의 심부름으로 법정에 걸어다닌다. 가끔은 다른 도시로 간다. 평일에 외근 달고 산으로 골프장에 가도 큰 지장 없다. 스마트폰이 있다. 주말과 명절을 앞 뒤로 조금 늘려서 틈틈이 국제선도 탄다. 해외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단절이다. 그 시간과 공간을 헤집고 다니면서 가족, 동료와의 밀접함을 누린다. 만만한게 일본이었다. 지난해에는 8회나 다녀왔구나. 친일파 소리 들을 일 있나. 중국도 가끔 다녀와야지. 비자를 받기 위해 여행사에 여권을 보내는 번거로움이 올해 해소되었다니 다행이다. 항공료도 숙박료도 싸다.

돌이켜보니 출발 전날 늘 하는 모바일 체크인이 안 될 때 문제를 알아챘어야 한다. 승객 소지자의 출국 수속이 온라인에서 안 되면 항공사 카운터에서도 안 된다는 것을. 무엇인가 시스템에 오류가 있나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 일찍 출발해야지. 서두르다 보니 혈압약과 당뇨약을 짐에 안 넣고 나왔다. 5월 23일 금요일 이른 아침 리무진 버스 안에서였다. 다행히 검색해 보니 인천공항 청사 지하층에 인하대학병원이 운영하는 진료소가 있다. 미리 환전해 둔 중국 돈을 은행 출장소에서 찾는다. 병원 앞에 대기하다가 8시에 문 열자마자 들어간다. 메모장에 저장했던 2년 전의 처방전을 의사 선생에게 보여 드린다. 공항 약국에 재고를 보유한 약을 찾아 처방해 주신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느낀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예약 없이 걸어들어가 전문의를 바로 만날 수 있다. 치료비도 약값도 믿을 수 없을만큼 싸다. 의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의사들은 그럭저럭 먹고 산다. 떼돈 벌 욕심에 무리한 개원을 하였다가 필자 같은 파산 변호사 신세를 지는 사람도 있다. 경쟁의 세계는 불가피하게 실패자들을 생산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의사들은 한 번 실패하더라도 예후가 좋다. 나라가 환자들을 꾸준히 보내 준다. 의료보험, 의료보호 같은 사회안전망이 그 역할을 한다. 우리 로컬 변호사가 의뢰인이 찾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지쳐 광고하고 사람 세워 고객 유치하다가 망하고 처벌도 받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이 좋은 시스템을 전임 통치자가 뒤집어 엎으려고 시도했다. 총선에서 대패한 후 다수당의 지속적 압박에 대립으로 일관하다가 계엄놀이를 하다가 쫓겨났다. 대폭 증원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주장했던 보건관리들은 아니면말고 식으로 어딘가 숨어버렸다. 젊은 의사들과 의학생들의 반발도 어영부영 잊혀지는 것 같다.

대한항공 카운터에는 짐을 부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짐없는 승객 창구는 없다. 모바일 체크인에 익숙한 사람이 여기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다. 재수 없으면 비행기 타지 못할 수도 있다. 한 달 전 일이다. 대학 동기생 M변호사 부부가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입장하여 게이트에 5분 전에 도착했다. 탑승을 거부 당했다. 실었던 짐 내려 놓느라 비행기 출발도 20분 지연되었다. 카운터 건너편에 직원이 서 있다. 전자 수속이 안 되는 승객을 안내한다. 사정을 듣고 다른 곳에 전화를 하는 방식이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당연하다. 자동 수속이 안 되던 사람들 아니던가. 그 큰 2터미널 대부분을 대한항공이 쓰는데 이게 무엇인가. 우거지상을 하고 떠드니 다른 직원이 다가온다. 장애인 우선 카운터로 인도한다. 아래 층 몇 호로 가시란다. 출입국 관리하는 곳이란다.

H회사를 떠올린다. 이 회사는 3월 4일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편에 정해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여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그 대리인이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물건값과 월급을 줄 운영자금 마련이 힘들 것을 예상하였다. 그러기 전에 회생절차를 신청하였다. 물론 금융채권은 당분간 묶이지만 H회사의 자산은 모든 부채를 상환하고도 남을 것으로 평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생절차에 대한 반응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시위가 벌어진다. H회사 앞에서, 투자자인 M조합 앞에서 심지어는 회생법원 앞에서. 일단 노동조합원들이다. 필자는 모르겠다. 회생신청이 노동자 급여를 차질 없이 주기 위한 것임을 아는 지 모르는 척 하는 지. 기업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소유권이라는 법적 의제에 불구하고 H회사는 그들의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우리 직장 우리가 지킨다는 결의가 없는 것 같다. 증권회사에서 단기 사채를 매수한 채권자 집단도 시위현장에 나섰다. 한국의 금융채권자들은 심사능력이 없는 것으로 가정되고 금융채권의 변제를 하지 못한 채무자는 지급능력이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속인것으로 간주된다.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채무자가 사기죄로 징역가는 것이 다반사이다. 물론 근대적 자본시장에서는 신용평가회사가 채무자인 발행자의 지급능력에 대하여 매기는 신용등급에 따라 발행물량과 조건이 변한다. 신용등급이 오르면 낮은 이자율에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고 내려가면 그 반대이겠다. 지급할 의사와 능력에 관한 기망은 신용등급의 변동가능성을 속이는 것으로 대체된다. 오랬동안 H회사가 단기 사채를 발행하면 증권회사가 이를 통으로 인수한 후 이를 기초로 다른 증권회사 또는 일반 투자자에게 증권을 팔아 차익을 얻는 거래를 해 왔다. 인수 과정은 당시의 신용등급을 포함하여 발행자가 제공한 자료를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신용등급이 내려간 것을 H회사가 인지한 날이 2월 25일이라는데, 마침 그 날 S증권이 H회사의 채권을 통으로 인수하는 계약을 완결한다. S증권 등은 H회사 K대표 등을 고소한다. H회사가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고 회생절차를 준비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사채를 발행한 것이니 사기라는 것이다. 사채 투자자들은 증권당국에 민원을 제기한다. 시끄러우니 국회의원들도 나선다. 오래 전부터 회생절차를 준비해 온 정황이 있어 검찰에 이첩하였다고 증권당국 리더가 발언하는 모습이 TV에 나온다. 4월 28일 검찰이 H회사 본사를 압수수색한다. 수사관들이 임직원들의 휴대전화와 책상 위의 서류를 다 털어가고 사무실을 점거하여 H회사의 관리업무는 거의 중단되었다. H회사 대표 2인과 지배주주인 M조합의 B회장은 주거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B회장이 5월 17일 공항에서 휴대전화를 압수 당하는 모습이 TV에 보도된다. 그렇게 필자는 H회사 대표 2인과 B회장의 출국금지 사실을 보도를 통하여 알고 있었다. 필자의 출국이 금지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변호사가 무슨 죄인가. 증권 발행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출입국 사무실에서 창구 직원이 전산 자료를 보고 연락처를 준다. 자기네는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단다. 서울중앙지검이다. 전화를 하니 수사관이 받는다. 출국금지 해제 해 달라니 검찰 청사로 와서 서류로 출국허가를 신청을 하여야 한단다. 출국 허가를 받은 들 예정된 항공편을 탈 수는 없다. 유람을 예정한 여행을 늦게라도 출발할 절실함은 없다. 피의자로 입건된 것이냐 참고인으로 되어 있냐고 물으니 잠시 후 중요참고인이란다. 화가 나서 검사에게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전달하라고 말했다. 수사관은 이런 종류의 담화에 익숙한 사람이다. 냉정하기 힘들다. H회사의 K대표에게 연락한다. 이 건과 관련하여 필자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사항은 공표하겠다고 말한다. 몇 번 만난 법무팀과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W변호사에게 전화하니 며칠 전에 검찰에 다녀왔단다. 조사를 받고 신분증을 바꾸어 나오는데 마치 사전 신호를 받았던 것처럼 기자들이 몰려들었단다. 뻔한 내용인 것처럼 H회사가 오래전부터 회생을 준비한 것이냐며 질문하더란다. W변호사는 회생절차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수사팀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다른 회사처럼 법무팀을 털면 결정적인 단서가 나올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이런 소동이 있기 한 달 전인 4월 25일 출국한 적이 있다. 동기생이 비행기를 놓치던 날이다. 전날 모 공중파 방송국의 어느 기자가 전화를 해 왔다. 오래 전부터 H회사의 회생절차를 필자가 준비하였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식이다. 녹음해서 방송에 내려는 수작이다. 고객의 일을 말해 줄 수 없다고 하고 통화를 중단하였다. 다음날 비행기 안에서 카톡으로 직원의 연락을 받았다. 위 기자가 카메라기자와 사무실을 급습했단다. 내가 일본에 가서 없다니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단다. 귀국한 후 지금까지 위 기자의 연락은 없었다. 그 날 보도된 뉴스 내용은 유튜브에 남겨져 있다. 수사도 하기 전에 이미 재판 다 했다. 회생신청서는 본문 59쪽 첨부서류 23개인데 서류 작업 시작은 2월 28일 오후 법원 제출은 3월 4일 새벽 0시 3분, H회사 설명대로면 28일 하루 만에 사실상 다 준비했다는 뜻이라고 기자는 말한다.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이다. 카메라는 그 다음 모 국회의원이 H기업 K대표에게 그 중 3일이 쉬는 날이라며 호통을 치는 장면으로 간다. 그 다음에는 필자의 사무실 복도를 따라 문 앞까지 온다. 2023년 말 H회사의 대주주인 M조합이 한 로펌에 법률 자문을 요청하여 돈줄이 끊기면 어떻게 대응할 지, 기업 회생도 가능할 지 등을 타진하고 회생 요건, 준비 기간, 필요 서류 등을 여러 차례 묻고 의견서를 받았는데, 자문은 해를 넘겨 2024년에도 이어졌고, 자문료는 H기업이 냈고 해당 로펌은 이번 회생신청도 맡았다고 한다. 필자가 사무실에 있었으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두르며 피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갔으리라. 증권감독 리더가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여 검찰에 이첩하였다고 발언하는 영상이 끝난 후, 2023년의 자문은 일회성이었고 그 후 추가 자문이 없었다는 K대표의 해명은 마치 K대표가 뻔한 거짓말을 한다는 인상을 주도록 편집되어 있었다.

수사 중인 사건에서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의자가 이미 범죄자가 되어 버리는 예가 있다. 어떤 사건은 수사 시작 전부터 여론재판에서 유무죄가 정해진다. 무슨 성추문 사건도 아니고 냉정하게 분석되어야 할 경제 사건에 이게 무슨 법석인가. 기업활동과 법적 절차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벼움이 검찰수사와 언론을 휘둘렀다. 한심할 뿐이다. 휴일 빼고 금요일 하루라니,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변호사는 휴일에도 일할 수 있고 사무직원도 그러하다. 회사원도 마찬가지이다. 급하면 이틀 밤을 새우기도 한다. 국회의원이나 공중파 기자들은 휴일근무도 야근도 한 적이 없는 나으리들인가. 큰 회사는 회계자료가 전부 공시되어 있다. 대형 유통업체는 매일, 매월의 매입, 매출이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자금 조달과 집행 실적도 이에 연동된다. 추세를 분석하여 장래를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어느 국회의원은 판사 시절 자신이 회생 사건 취급한 적이 있다며 K대표 앞에서 호통을 쳤다. 이런 기업회생 신청 서류를 만들려면 2주는 걸린다는 것이다. 아마 예전에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신청서를 요령있게 잘 쓴들 첨부하여야 할 증빙과 필수 서류가 많다. 모든 재산에 대하여 등기부 같은 원인서류를 발급 받고 부본을 인쇄하여 책을 만들었다. 이것을 카트에 넣고 법원으로 가서 제출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몇 년 전 전자소송이 회생 사건에도 시행되었다. 신청서는 웹상의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것으로 작성할 수 있고, 증빙도 PDF파일을 올린 후 마우스 클릭 조작 몇 번으로 제출할 수 있다. 신청서 내용이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숙련된 변호사와 사무직원이라면 하루 이틀에 하지 못할 바 아니다. 큰 회사에는 각 부서가 다른 부서의 전산자료에 접근할 수 없어 대리인의 서류 준비에 애로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각 부서의 대표가 모여 대리인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게 필자의 사무실은 만 2일 만에 H회사의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이룩해냈다. 보통의 법률사무소도 심지어 대형로펌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그들 나름의 사정일 뿐이다.

사건의 경과는 결코 기자나 국회의원의 의심을 정당화할만큼 이상하지 않다. 오래 전에 K대표는 M조합이 인수했던 Y회사의 회생절차를 필자에게 의뢰하여 진행한 적이 있다. M&A가 성공하여 Y회사는 새로운 투자자를 맞았다. 원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기에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한 채권자의 모르쇠식 버티기도 대주단의 합의를 저해할 수 있다. 대환이 안 되면 채무불이행이 되기도 한다. 잘 운영되던 기업이 이렇게 되는 것은 비상사태이다. 대책으로 기업이 회생절차를 연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나라도 적의 침입을 가정하여 예비군도 두고 공무원들은 을지훈련을 한다.

필자는 K 대표와 친하지 않고 사업상 자문도 하지 않는다. M조합이나 H사는 평소 사업상의 자문을 다른 대형로펌에서 받는다. 오랜만에 K대표가 2023년 11월의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만기가 돌아오는 조 단위의 차입금 때문이었다. 회의석상에서 K대표로부터 들은 H사 문제의 직접적 기원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전자상거래업체의 시장 잠식 그리고 코로나 사태의 지속이었다. 캐셔 대부분이 최저임금 남짓한 급여를 받는다. 급격한 인상의 충격은 그때까지 시현하던 영업이익에 맞먹었다. 전자상거래업체의 도전도 지속되고 있다. 비용급증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인 매출이 신장될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2020년부터 코로나 사태로 오프라인 매장에 손님이 줄었다. 전국민에게 지급된 소비쿠폰도 대형마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대체소비로 인하여 매출이 더 줄었다. 삼중고이다. 이런 실적과 전망 하에서는 장기차입을 유치하기 힘들고 조건도 악화한다. H사의 전신인 외국계 기업 시절부터 임차한 상당수 임차매장의 차임도 문제였다. 웬만한 매상으로는 다액의 영업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차임 감액이 이 문제를 완화할 수 있지만 임대인들도 애로가 있다. 반납하는 것도 희망이익 상당 손해배상과 원상회복의 의무를 고려하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회생절차를 고려할 수 있다. 연구를 거쳐 필자는 회생절차의 구조를 하나 제시하였다. 일단 진행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H회사의 서류 작업을 조언하였다. 한 동안 연락이 없었고 후에 K대표로부터 대주단과의 협의로 문제가 해결되었고 자문료는 H회사가 정산하여 준다는 답을 들었다. 그 후 K대표와는 서로 연락이 없었고 정산은 K대표의 말대로 되었다. 그렇게 필자는 H회사의 일을 잊고 있었다.

K대표에게서 휴대전화로 연락이 온 것은 2월 25일이다. 마지막 소통으로부터 1년 3개월 정도 경과한 다음이다. 혹시 연휴 중에 작업해서 휴일이 끝나는 3월 4일 화요일에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는 지를 물어본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단다. 채권을 발행해도 인수할 의도가 있는 투자자들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H회사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 시장에 소화되지 않는단다. 금융채권 상환스케쥴을 맞추려면 상거래채무의 지급이 힘들어지고 그렇게 되면 영업은 끝장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1항 제1호에 의하면 “사업의 계속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고는 변제기에 있는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경우”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할 수 있다. H회사가 바로 이런 딜레마에 처해 있다. 사채 빚을 갚자니 장사를 못하고, 장사하려고 빚을 안 갚으면 신용이 떨어져 더 빚을 얻지 못한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가만히 두면 기업활동은 분해된다. 회생절차는 일시적으로라도 금융채무의 변제를 이연하고 상거래를 정상화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2009년 미국 연방정부는 거대 자동차 회사 GM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였던 적이 있다. 구제금융이 한도 없이 들어갈 것임을 깨달은 후 스스로 채권자가 되어 GM그룹을 챕터 일레븐(Chapter 11, 우리의 회생절차에 해당) 절차로 밀어 넣었다. 이 때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차를 만드는데 은행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회생절차라는 것은 보통 이런 것이다. 과거의 채권자는 잠깐 물러서 있고,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자본구조를 새로 규정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런 딜레마 상황에 처한 후 바로 회생절차를 선택하는 경우는 다물다. 대부분은 재무위기에 몰릴 때 가진 자원을 탈탈 털어 금융채무를 상환하는 노력을 하지만 불가능하다. 지급불능에 당한 후 실낱같은 재기의 희망을 내걸고 찾아온다. 그래도 절차는 진행되지만 그다지 예후가 좋지 않다. 기업활동을 위하여는 운영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부채 상환을 위해 자원을 소진한 다음에는 더 이상 팔아먹을 것도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시간이 갈수록 급속히 커지는 악성 종양이 0기부터 4기까지로 분류될 수 있고 일찍 치료할 수록 예후가 좋은 것과 같다. 재무위기를 예상하거나 겪고 있는 기업도 회생절차를 빨리 신청하면 할 수록 예후가 좋다. 늦으면 거의 재건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청산으로 몰린다. H회사는 지급불능에 이르기 전에 전격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하였다. 그것은 K대표 자신이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대형로펌에서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하였고 그가 주로 하는 일은 M&A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사무실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은 변호사의 일상이다. 사무장에게 주말 일정을 취소할 수 있는 지 확인하니 괜찮단다. K대표에게 원하는 시기에 회생신청 가능하다고 답한다. 물론 확정된 것이 없기에 우리는 특별히 준비도 하지 않는다. 연휴 첫 날인 3월 1일은 다른 고객사 대표와 사무장, 윤 변호사와 같이 골프 갈 약속이 있다. 이것도 변경할 이유가 없다. 주말을 앞둔 27일 K대표는 다음날 아침에 H회사 본사로 들어와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회생절차를 준비하자는 말은 없었지만, 그것 이외에 다른 용무가 있을 수 없다. 입장한 회의장에는 간부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필자는 H회사 직원들을 그 때 처음 만났다. K대표는 회생절차를 진행할 결정을 알리고 개요를 설명하였다. 필자도 보충설명을 하고 나서 사무장에게 H회사 측에서 준비할 서류 목록과 약정서 안을 전송하도록 하였다. 이런 메가케이스(Mega case)는 현금흐름이 무너지기 전 조기에 신청하고 후속 절차도 신속하게 진행하여야 기업가치가 유지될 수 있다. 복귀하던 도중 회생법원에 연락하여 약속을 잡은 후 오후에는 H회사가 회생신청 예정임을 보고하였다. 신용등급이 강등으로 인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운영자금 마련이 힘들어져 회생신청이 불가피함을 보고하였고, 법원으로부터는 신청 당일 개시결정을 하여 사실상 미국식 오토매틱 스테이(automatic stay)가 실현되는 효과를 낼 것이니 기술적인 사항을 미리 준비할 것을 지시 받았다. 필자는 2일, 3일 서류 작업을 하였고 3일 오전에 열린 H회사 이사들 모임에도 다녀왔다. 그렇게 3일 밤 완성한 서류를 전자소송 웹에 올려 4일로 넘어가면서 제출할 수 있었다. 4일 오전 일과 개시와 동시에 H 회사는 기자회견을 하였고, H회사의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일이 부산스럽게 진행되어 왔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출국금지 현황을 조회해보니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출국금지로 뜬다. 근거 조항은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2항이다. 범죄 수사를 위하여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하여 1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 제4조의 2 제1항은 출국금지기간을 초과하여 계속 출국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4조의 3 제1항에 의하면 출국금지나 그 연장은 당사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제3항 제2호에 의하면 범죄수사에 중대하고 명백한 장애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통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총 출국금지기간이 3개월을 넘을 때 당사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도대체 무슨 법이 이 모양인가. 범죄수사의 편의를 위하여 합당한 영장 없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해외 출국도 신체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본다. 헌법 정신에 반한다. 선진국은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한 자국민의 출국을 막지 않는다. 공항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을 때 필자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느꼈다. 함부로 출국이 저지되어 있을 때 우리나라 검찰이 인권을 무시한다고 느낀다.

주위에 알려도 반응이 썰렁했다. H회사가 그런 사기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분명히 언론 보도의 영향이다. L모 D모 그룹의 일부 계열사가 재무위기에 당하여 회생절차를 신청한 일이 있다. 그렇게 회생절차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와중에 증권시장에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였다고 사기로 처벌 받은 예가 있다. 그 당시 수사팀의 리더가 나중에 검찰총장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다. 그와 가깝게 지낸다던 집단의 막내 격인 사람이 지금 H회사 건 수사팀의 리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은 H회사의 경우도 위 재벌 사례가 비슷하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리라. 심지어 H회사가 위 L모, D모 그룹과 똑같은 경우라고 SNS에 단언하는 고참 변호사도 있었다.

법률에는 한 달씩 연장하고 원칙적으로 4개월째에는 통보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불만스럽지만 수사결과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6월말 출발이 예정된 항공권도 취소한다. 1개월 출국금지를 세 번 연장하여 8월말까지 출국이 금지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 휴정기 중인 7월 말 경이다. 8월 8일 처음 보는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수사팀이 필자의 통신이용자정보(성명, 전화번호등 가입정보)가 수사 목적을 위하여  4월 15일에 제공되었음을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의 2에 의하여 통지한다는 취지이다. 같은 사건번호가 기재된 세 통의 우편물도 집으로 왔다. 세 사람의 휴대전화 기록에 나오는 필자의 정보를 털어간 것이다. 필자도 털렸다. 8월 14일 동료 변호사들과 친지들 그리고 의뢰인들의 가입자 정보를 수사팀에 제공했다는 문자가 이들에게 뿌려졌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그 다음날인 15일, 16일까지 3회에 걸쳐 받은 사람도 있었고, 한 두번 빠진 사람도 있었다. 그분들의 기분이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식으로 자신의 법률문제를 수사기관이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겁을 먹고 필자에게 연락을 해 온 사람도 있었다. 필경 수사팀이 대리인 역할을 한 변호사인 필자를 겁박하기 위한 단서를 찾았던 것인가보다. 앞의 D그룹에 재직한 적이 있었던 모 선배가 자발적으로 수사팀으로 가서 고변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턴다. 수사가 진행되면 오너가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어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자료를 가져다 주며 처벌을 면한단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단다. 변호사의 탈을 쓰고 의뢰인을 팔아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듣고 무시한다.

K대표 등을 압수수색할 때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사를 거쳐 이들이 기소될 것처럼 수선을 떨었다. 앞의 L그룹, D그룹 회장 사건 보도를 찾아 보니 압수수색 이후 4,5개월 정도 지나 구속기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4개월이 지난 지금 피의자는 물론 참고인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중파 방송이 필자를 취재하다 실패한 후 필자의 출국금지가 이루어지고, 또 광범위하게 필자와 연락한 사람들의 인적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것은 수사팀이 필자에게도 압수수색을 시도하였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영장신청을 법원이 기각하였으리라.

친한 그룹에 있는 동료 변호사가 카톡방에 올렸다. 수사팀 중 한 사람이 기소한 사건 이야기란다. 23건을 모아 기소했는데 피고인이 6인, 기록은 5만쪽, 증인이 103명인데 14번째 증인 신문중이고, 재판장이 심리 중 이 사건 판결 쓸 사람 이제 로스쿨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비꼬았단다. 이 말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 저렇게 H회사도 털고 필자도 털었는데, 아직 K대표나 필자 포함하여 피의자나 참고인을 소환하여 조사하였다는 이야기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수사팀이 무혐의처분을 할 수도 없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금융산업은 회생 신청 자체를 범죄시하며 규탄한다. 노동조합도 위기에 처한 우리 직장 우리가 지킨다는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네 회사 경영진을 처벌해 달라는 주장이다. 국회의원들은 노동자들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니 H회사를 괴롭히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 실제로 청문회 개최 안건도 의안에 올라 와 있다. 이런 식이면 H회사 사건의 처리에 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지난 정권에서 고발되었던 경기주택공사 사장인 이 모 변호사는 무혐의 처분 받는데 3년이 걸렸다. 공소장을 쓰던 불기소장을 쓰던 사건 처리를 할 주임검사가 전입하기까지는 이번 달이 문제가 아니고 올해를 넘겨야 한다. 어쩌면, 장래의 주임검사는 아직 로스쿨에 재학 중이거나 지금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8월 초 필자는 법무부에 출국금지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하였다. 평소 존경하는 동기생 김 모 변호사가 권하는대로 행정소송과 집행정지신청도 8월 27일 제기하였다. 법원은 심문기일과 변론기일을 비교적 일찍 지정하여 주었다. 심문기일을 기다리던 도중 김 변호사는 집행정지 사유를 정당화하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에 대하여 수긍이 갈만한 사유를 적어내는 것을 권한다. 개인적 사유 말고 뭔가 그럴 듯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 올해 대만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초청 메일이 있고, 예전의 신문기사를 인터넷에서 뒤지니 필자가 일본에서 열린 같은 회의 참석 기사가 나온다. 변호사협회 간부 노릇을 하느라 참석 못한 회의에 이제 참석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는 변호사 노릇하다가 참고인이 되면 해외 출국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 금전으로 회복하기 힘든 손해라고 주장하는 서면을 낸다.

피고 쪽의 답변서가 왔다. 위 국제회의에 가지 않아도 지장이 없다는 주장은 그렇다고 치자. 필자를 ‘핵심관계자’ ‘스모킹건’으로 표현한다. “신청인은 위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서, 2023. 11.경부터 2025. 3.경까지 M조합, H회사 관계자와 연락하고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는 등 H회사의 회생 절차를 주도하고, H회사 측에서 회생 신청을 하기도 전에 서울회생법원 관계자와 연락하였으며, M조합, H회사 관계자에게 향후 회생절차에 대한 이메일을 발송한 사실이 확인되었는바, 앞으로의 수사 진행에 있어 신청인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이고, “특히 신청인은 언론에서 스모킹건으로 보도된 기업회생 관련 이메일의 작성 및 송부자이고, H 회사의 기업회생 관련 정보의 생성 주체인바, 사건의 핵심 쟁점에 대한 판단에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를 상세히 알고 있고, 그에 관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자”라는 것이다. 이렇다 할 업적 없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로컬 변호사로서 “핵심 관계자”로 지목되는 것은 필자로서는 과분한 자리에 취직 당한 기분이다만, 변호사가 직무를 행한 것을 이유로 여행의 자유를 부정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동료 법률인들에게 또 현재의 고객들, 잠재적 고객들에게 고백하여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중 수사팀에는 전국 인사로 리더가 지방으로 전출하고 주임검사도 교체되는 변화가 있었나보다. 집행정지 사건 심문에 직접 출석하였다. 재판장은 해외에 가족이 나가 있는 지, 필자가 변호사 사무실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물으신다. 다음날이던가 새로 온 주임검사로부터 비공식 면담을 제안하는 전화가 와서 들어간다. 이 글에 나오는 저간의 사정을 설명 드렸다. 물어보기 위해 찾았을 때 참고인이 없으면 불편하니까 일단 출국금지를 하는 것 같다고 해명하며 무조건 출국금지를 해제할 터이니 혹시 모르니 해외에 장기적으로 나갈 경우 연락해 달란다. 그렇게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법무부는 출국금지를 해제하였고, 필자의 소송은 유지할 이익을 잃었다. 집행정지신청도 소송도 취하하였다. 현행법에 의하면 수사 편의를 위하여 출국금지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소송대리인, 변호인 역할을 하는 변호사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 재량권 남용을 구성할 수 있음은 물론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규정 또는 영장주의에 어긋난다는 나의 견해의 타당성을 공적인 재판으로 지지 받을 기회도 놓쳤다. 어쩌랴.

그나저나 필자가 겪은 이 사태는 검찰의 “특수수사”가 남용되어 온 전형이다. 이런 일 때문에 전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저하되어 왔다. 극단적으로 검찰청 폐지라는 혁명적 조치가 입법의 형식으로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어느날 인천공항에서 돌아올 때에는 필자도 입법을 주도한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변종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고 하여 검찰 전체를 매도하고 처벌할 일인 지는 의문이다. 수사를 사법경찰이 독점하도록 한다면, 그들은 과거 검찰의 변종들처럼 타락할 수 있다. 수사편의를 이유로 인권 유린을 당한 필자가 뼈저리게 느낀 바이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액튼 경의 말씀이란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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