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과 파산절차

파산과 파산절차

파산은 흔히 쓰는 말이다. 두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사람이 제 때에 빚을 갚지 않는 상태이다. 즉 일반적 지급불능이다. 주로 사업을 운영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쓰인다. 사람들은 누가 파산했다고 수군거린다. 채무자를 알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스캔들이 된다. 여러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려 간 사람이 있다. 그가 망했다. 너도 당했냐, 나도 당했다. 이런 식이다. 우호적이던 관계는 원수가 된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격언은 어디로 가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 친구도 잃고 돈도 잃는다는 말이 실감된다. 돈을 떼인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또 채권자들 사이에서 각자 각 뜯어먹기 식의 피투성이가 된 투쟁이 일어난다. 가진 재산 다 날리고 빈털털이가 되었다. 고의로 파산 상태에 이른 채무자는 비난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책임질 수 없는 외부적 사정으로 지급불능에 이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 판단의 착오와 실수 때문이기도 하고, 실패를 교정하지 못하는 심리적 기제 때문에 파국을 보기도 한다. 어떤 원인이든, 파산은 특정 시점에서 지급불능이라는 재무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의 파산에 이르는 과정은 어둡고 절망적이다.

둘째, 파산은 이런 상태를 처리하는 공적인 절차를 의미한다. 나라의 감독 하에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재산을 처리하는 것이다. 파산한 채무자가 가진 재산을 수집해서 채권자들이 나누어 가진다. 말하자면 집합적 채권추심이다. ‘빚잔치’가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집합적 채권추심은 상업이 존재하는 한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의 12표법은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는 경우 채무자를 노예로 팔아 그 대금을 채권자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을 허용했다. 그런데 현대의 파산절차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상업도시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자본주의가 기원한 곳이다. 환전상이 빚을 갚지 못할 때 채권자들이 몰려가 벤치를 두들겨 부수었다. 벤치를 뜻하는 명사 banca, 부순다는 rotta가 결합한 bancarotta가 영어의 bankruptcy의 어원이다. 의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중세 상업도시에서 채무자의 가게를 부순 채권자들은 빚잔치를 했을 것이다. 채무자의 남은 재산을 처분하여 점심 값이라도 나누어 가졌으리라. 아니면 남은 것은 벤치 뿐임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물론 채무자를 용서하는 관습도 상인들에게는 있었다. 채무자가 도시의 광장에 나가 하의를 벗고 기둥에 엉덩이를 비비고 “나는 파산했다!”라고 외치는 세리머니를 하는 치욕을 감수한다면 말이다. 파산은 수치였으나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무질서한 시장교환은 파산이라는 현상을 내포한다.

그 무렵 시작된 자본주의는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전세계적인 규모의 경쟁으로 진화해 왔다. 자본주의의 진화에 따라 파산제도도 이에 맞추어 변모해 왔다.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보험, 20세기 이후 소비자금융, 개인의 대량소비 시대. 서양에서 발전한 시장경제에 편입된 우리도 그들의 법률을 모방하여 도입하였다. 19세기에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앞장섰다. 그들은 재산을 부순다는 파산(破產)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들의 영향 아래 있던 우리도 따랐다. 흔히 그것을 서양법의 계수(繼受)라고 한다. 이질적인 제도가 이식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파산제도를 우리는 20세기에 도입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21세기에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현대의 파산절차에서 개인인 채무자는 채권자들의 자비가 아니라 권리로써 면책을 얻는다. 연혁적으로 상인에게만 인정되었으나, 현재는 상인 즉 사업을 하는 사람일 필요가 없다. 상인들 사이의 관습이 아니라 법률에 그렇게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법률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 그러하다. 그 핵심 조건은 채무자가 자기 가진 것을 모두 채권자들을 위해 내 놓는 것이다. 물론 원칙이다. 예외는 있다. 그렇게 주로 계약에 의하여 발생한 대부분의 부채로부터 면책된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 파산법을 제정하여 개인의 면책을 허용하였다. 1962. 1. 20. 법률 제998호로 제정되어 같은 날 시행된 파산법 제3편은 면책 및 복권에 관하여 규정한다. 다만, 활용된 예는 거의 없었다.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다지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회에서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은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갈등이 근저에 있다. 신생 공화국에서 파산제도를 적용할 절실한 필요성은 크지 않았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개인의 면책을 인정하는 파산제도는 활발하게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럴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 그것을 극복하는 대외개방 내수진작을 위한 소비확대 정책이 그 원인이다.

사업이라는 것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 실패는 빚을 남긴다. 사업주, 기업인은 그 실패로 인한 빚을 감당한다. 법인사업자로 전환하면 사업주와 기업인이 빚에 시달릴 위험이 많이 준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는 여전히 많다. 또 기업인이나 가족이 법인의 부채에 보증을 제공하는 사례도 많다. 채권자들은 바보인가. 유한책임으로의 도피를 경영자, 사업주 개인의 보증을 요구한다. 물론 보험 제도는 사업상의 위험 회피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미리 예측하여 준비해야 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기업위험 그 자체를 인수하는 보험회사는 사실상 없다. 그리고 사업가는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낙관적이다. 증권투자에서 실패를 왜 생각하는가? 그래서 보험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맡기면 충분하지 않게 된다.

소비자도 마찬가지이다.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내구소비재를 빚 지지 않고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다가 실직을 하거나 가족에게 질병, 사고가 찾아올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을 보험으로 대비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충분한 보험을 사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러기에는 낙관적이다. 또 거의 누구든지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저축을 하는 것만으로는 그럭저럭 사는 중산층 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주식과 채권을 사고 팔고 선물, 옵션, 가상화폐 같은 위험한 투자를 한다. 빚 지고 여러 채의 부동산을 사서 팔거나 임대한다. 속칭 갭투자이다. 소수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번다. 그런 사례는 언론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이 있다. 다수는 망한다. 그런 사례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 가십으로 남을 뿐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일상이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사후적으로 보면 주제를 넘은 소비와 투자이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파산한다. 금융기관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돈을 떼인다. 금융채권자도 파산한다. 대량 파산의 시대이다.

전통적인 도덕의 견지에서만 본다면, 빚을 갚지 않는 것은 충분히 비난할만하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한도가 있다. 많은 사람이 빚을 진 상태가 되어 방치되면 국민경제의 운영에 준다. 대중은 대량소비와 주제 넘은 투자로 대기업을 후원한다. 오늘날 대기업은 예외 없이 대중을 상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 대중에게 봉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기업은 정당성이 있다. 그런데 부채 상환을 하는 자는 소비여력에 제한을 받는다. 상환을 포기하는 자는 생산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의욕도 없게 마련이다. 부채를 면하게 해 주면 이들은 다시 경제활동으로 돌아온다.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니 소비를 한다. 이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파는 기업의 매출이 는다. 공동체는 번영한다. 물론 대중이 부채를 갚게 하는 것은 사회의 기강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소비자가 부채를 갚지 않게 허용하는 것도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부채의 부담으로부터 풀려난 이들은 소비를 재개할 것이고, 다시 부채를 질 것이다. 기업도 은행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 기업은 근로자에게 월급을 준다. 그렇게 거시경제는 순환한다.

빚진 자를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자비와 상관없이 개인인 채무자를 해방하는 것이다. 약속을 깨는 것을 허용하는 그런 식의 법령을 경제규제(economic regulations)라고 한다. 개인의 면책을 인정하는 규정이 바로 이런 경제규제법에 해당한다. 최저임금법이나 퇴직금, 해고금지와 같이 근로자에게 약속한 바를 넘어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법, 임차인이 자신이 약속한 임대기간을 넘겨 살게 해 줄 수 있는 법,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런 법률은 근로자, 임차인 같은 계급을 옹호한다.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다. 관대한 파산제도의 보호를 받을 채무자는 모든 계급으로부터의 낙오자들이다. 파산이라는 경제규제는 특수이익을 옹호하지 않는다.

피와 살이 있는 개인을 파산으로 이끌어가는 경제적 과정은 우울하고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그 결과를 처리하는 파산절차 그 자체는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다. 파산법을 운용하는 법원과 그에 봉사하는 법률가들과 보조자들은 세계적 규모의 경쟁에 노출된 가계와 기업이 적응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중심에서 막중한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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