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의 심리와 판단
파산신청에는 각 사건마다 고유의 사건번호가 붙는다. 전자적으로 접수된 때에는 즉시, 드물게 종이 위에 출력된 신청서가 제출된 때에는 민원실에서 사건번호를 기재한다. 사건이 접수된 연도 다음에 사건분류기호를 붙이고 그 다음 접수된 순서로 번호를 붙인다. 개인파산의 경우 분류기호는 “하단”이다. 사건번호는 2026하단23459 같은 식이다. 형식적 사항에 관하여는 법원공무원도 심사를 하고 민원인에게 지도를 할 수 있고 보정을 권고하기도 한다. 법원공무원이 놓친 경우에는 법관이 하기도 한다. 파산절차의 비용은 신청 당시 예납되어야 한다. 제303조. 주로 파산관재인의 보수에 충당된다. 법원의 재판수수료인 인지, 우체국을 통하여 송달을 하는 비용도 납부하여야 한다. 신청서가 격식에 맞게 작성되고 비용이 납부되어야 한다는 형식적 사항에 흠결이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격식을 갖춘 파산신청이 제출되면 법원은 그 실질적 요건을 검토한 후 파산절차를 시작할 것인 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법원은 먼저 과연 신청할 자격이 있는 지 여부부터 보아야 하겠다. 도대체 누가 신청할 수 있는가? 아무나 신청할 수 있다면 사법시스템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사법시스템은 법의 판단을 받을 이해관계가 있는 자 사이에 내부화될 것을 가정한다. 파산절차에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채권자와 채무자이다. 둘 다 신청할 수 있다. 제294조 제1항. 우선 채무자이다. 개별적 채권추심을 막는 것은 채무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반사적으로 채무자는 당연히 파산절차로부터 보호를 받는 면이 있다. 이것은 주로 개인에게 적용되지만 법인의 대표자도 마찬가지이다. 채권자가 단념하도록 하는 효과는 집합적 절차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개인파산제도는 채무자에게 면책을 부여한다. 이것은 개인의 파산신청에 있어서 핵심적 요소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에 대한 파산절차는 거의 모두 개인인 채무자가 신청한다.
보통 채권자가 신청할 이익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파산제도는 채권자들이 개시한 것에 기원이 있다. 그런데 채권자가 파산을 신청할 이익이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첫째, 채무자의 재산이 이곳저곳에 많고 채권자도 많은 경우이다. 일일히 개별 채권자가 개별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 채권자들에게나 사법시스템에나 그러하다. 실례로는, 대규모의 기업어음(CP)를 발행하여 다수의 투자자에게 1700억원의 피해를 발생하게 하였다는 불법행위의 피해자들의 신청에 의하여 D그룹 H모 회장에게 개인파산절차를 진행한 사례가 있었다. 집합적 채권추심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발휘된 예이다.
둘째, 어떤 채권자는 파산절차를 통하여 부인권을 행사하는 등 채무자의 재산을 수집하는 노력을 해 보고 싶을 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채권자이든 그 권능으로서 이를 할 수 있다. 민법상 채권자대위와 채권자취소가 그것이다. 채무자가 재산이 있어야 하는 것은 채권자의 이익이다. 그런데 부채에 짓눌린 채권자는 재산을 회수할 인센티브가 적고 오히려 친한 일부 채권자에게 또는 채권도 없는 자에게 재산을 유출할 인센티브가 있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행사하지 않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민법 제404조 제1항. 또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민법 제406조 제1항. 그리고 채권자대위나 채권자취소를 통하여 회수한 재산은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에 충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실무이다. 원칙적으로 개별채권자는 채권자대위나 채권자취소에 호소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 그러나, 다른 채권자는 먼저 채권자대위나 채권자취소에 착수한 채권자에게 채무자 재산을 나누어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다. 그것을 강제하는 수단으로서 소외되었던 다른 채권자는 파산을 신청할 수 있다. 파산절차에서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하고 채무자의 행위를 부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산절차에서는 개별채권자가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한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셋째, 파산의 선고는 일시적으로나마 채무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경우가 있다. 간접강제수단으로 채권자가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업인을 상대로 채권회수를 위한 간접강제수단으로 채권자가 파산을 신청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의료인들에 대하여는 자격제한이 철폐되었고, 또한 채무자가 거의 면책을 받는 지금은 실무상의 중요성을 거의 상실하기는 하였다.
넷째, 영업을 하고 있는 채무자를 상대로 하는 파산신청이다. 영업을 하는 환전상의 벤치를 부순다는 파산의 어원에 부합하는 절차이다. 채무자의 재산과 영업을 파산관재인이 접수하게 된다면, 채무자는 더 이상 자신이 사업주로서 영업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채무자의 신용과 명성을 손상함으로써 영업의 가치를 줄일 수 있다. 당연히 채권자에게도 불이익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채권자가 파산의 신청을 하는 것은 채무자에 대한 압박이 된다. 파산을 신청 당하였다는 것 자체가 신용이 추락하는 게기가 되고 실제로 지급불능을 촉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채권자의 신청은 채무자의 신청에 비하여 조금은 엄격하게 볼 필요가 있다. 법률도 채권자가 파산신청을 할 때에는 그 채권의 존재 및 파산의 원인인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제294조 제2항. 채권이 존재하는 사실은 보통 판결 또는 이에 준하는 자료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산의 원인인 사실은 지급불능이다. 제305조 제1항. 지급정지는 지급불능으로 추정된다. 같은 조 제2항. 그러면 판결을 받아 강제집행을 시도해 보았는데 주효하지 못하였다면 파산의 요건은 소명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형일 뿐이다. 판결 없이 지급불능이라는 채권자의 주장을 받아들인 예도 필자는 경험한 바 있다.
다섯째, 채권자는 채무자와 가까운 사람일 수 있다. 사업이 내리막을 겪을 때 재무적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에게 속아주는 식으로 운영자금을 빌려 주는 것은 채무자의 친족, 친지, 친구가 많다. 채무자의 사기행위에 분개하여 채무자를 형사처벌해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친족, 친지의 애정이 우선할 수 있다. 그는 채무자를 면책하기 위하여 파산을 신청할 수도 있겠다. 상인에 대하여만 채권자의 신청에 의하여만 파산절차가 개시되었던 시기에는 이런 방식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미합중국 건국 초기에 판사를 역임하고 해상무역에 투자하였던 채무자에 대하여 친족이 채권자로서 신청한 사례가 있다. 속칭 “약속대련”과 비슷한 구조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응용하지 못할 바는 아니겠지만, 역시 드물 수 밖에 없겠다.
채무자는 파산의 원인 즉 지급불능에 대한 증거를 낼 필요가 없다. 신청 자체가 전 세계에 대하여 지급거절의 선언을 구성한다. 따라서 지급불능은 그 자체로 명백하다. 실무상으로는 채권자목록 이외에 금융기관 또는 이들의 채권을 양수한 채권자들에 대하여는 부채증명서를 발급 받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채무자의 신청은 거의 받아들여질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은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할 때에는 파산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제309조 제1항.
1. 신청인이 절차의 비용을 미리 납부하지 아니한 때
2. 법원에 회생절차 또는 개인회생절차가 계속되어 있고 그 절차에 의함이 채권자 일반의 이익에 부합하는 때
3. 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이 존재하지 아니한 때
4. 신청인이 소재불명인 때
5. 그 밖에 신청이 성실하지 아니한 때
1호는 형식적인 사유이니 거의 의문이 없다. 2호는 회생절차나 개인회생절차가 파산절차에 의한 청산보다 나은 변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3호, 4호도 판단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5호는 그 성실성이 무엇이냐에 관하여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길 것이다. 법원의 보정명령이나 권고를 따르지 않을 때 5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다만 보정명령이나 권고가 적법한 것인지는 별도의 심사를 필요로 하겠다. 대법원은 “‘신청이 성실하지 아니한 때’라 함은 채무자가 위 법률 제302조 제1항에 정한 신청서의 기재사항을 누락하였거나 위 법률 제302조 제2항 및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규칙’ 제72조에 정한 첨부서류를 제출하지 아니하였고, 이에 대하여 법원이 보정을 촉구하였음에도 채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이 보정을 명한 사항이 위와 같이 법령상 요구되지 않는 내용에 관한 것이라면 채무자가 그 사항을 이행하지 못 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파산신청을 기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또한 채무자가 법원의 보정 요구에 일단 응한 경우에는 그 내용이 법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 하였다 하더라도 법원이 추가적인 보정 요구나 심문 등을 통하여 이를 시정할 기회를 제공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파산신청을 기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 2008. 9. 25.자 2008마1070 결정.
추상적인 일반조항은 하나 더 있다. 법원은 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심문을 거쳐 파산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제309조 제1항. 파산제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장차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 조문을 근거로 파산신청을 기각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개인인 경우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은 채무자가 현재는 지급불능 상태이지만 계속적으로 또는 반복하여 일정한 소득을 얻고 있고, 이러한 소득에서 필수적으로 지출하여야 하는 생계비, 조세 등을 공제한 가용소득으로 채무의 상당 부분을 계속적으로 변제할 수 있기 때문에 회생절차·개인회생절차 등을 통하여 충분히 회생을 도모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주로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채무자가 회생절차·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한다면 그 절차를 통하여 충분히 회생을 도모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전혀 심리하여 보지도 아니한 상태에서 채무자에게 장래 소득이 예상된다는 사정만에 터잡아 함부로 채무자의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2009. 5. 28.자 2008마1904,1905 결정.
위와 같이 원심 법원으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례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급심의 실무는 광범위하게 개인파산에 대하여 적대적으로 운영되어 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것은 개인파산에 대하여 소극적인 문화를 반영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개인파산이 채무자의 장래를 해방하는 것은 그가 장래에 소득을 얻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장차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이 파산신청을 남용이라고 기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과도한 절충주의가 자기부정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파산제도를 운영하는 취지가 최고의 전문가 집단에게도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스쿨에서도 파산법을 가르치지 않으니 법률책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판사라고 한 들 파산에 의한 면책의 필요성을 경험을 통하여 체득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어쩌겠는가. 이 책에서라도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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