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보호의 메커니즘: 면책
채무자가 파산절차를 통하여 신선한 새 출발을 얻는 메커니즘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채권추심으로부터 거의 해방된다. 면책(免責)이라고 한다. 일부는 파산절차를 투과하지만, 통상은 채무자의 재기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가정할 수 있다. 둘째, 당장의 생활에 필요한 일부 재산은 채무자가 보유할 수 있다. 실무가들은 이를 면제재산(免除財産)이라고 한다. 셋째, 파산선고 이후에 취득하는 재산은 채무자의 것이다. 신득재산(新得財産)이라고 한다.
채권추심으로부터의 해방은 이미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단계에서부터 발휘된다. 파산의 신청은 그 자체만으로도 채권자들의 추심의지를 소거할 수 있다. 부채를 갚지 않는 채무자에게 채권자는 통신과 방문활동을 통하여 접근하여 빚을 갚으라고 독촉할 수 있다. 물론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을 비롯하여 채권추심에 관한 규제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자존감과 도덕심에 호소하는 한편 법적 절차의 위협과 아울러 채무자가 의무를 이행할 때까지 이러한 추심행위가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우편과 문자 등 전자적 방식에 의한 통지는 채권의 정당한 권원에 속한다. 당연히 채무자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지긋지긋한 추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도산절차를 신청할 이익은 충분하다. 일부 채권자들이 사기죄 등으로 형사처벌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간접강제에 나선다. 그것은 더 이상 채권자들의 추심노력이 주효하지 않을 것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제도화된 금융기관들은 보통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채무자가 도산절차를 신청하였다는 것을 전문적인 채권추심인이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추심활동의 강도는 줄어든다. 그것은 채무자가 파산법정으로 가는 것은 그 자체가 전세계에 대한 지급거절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유로든 파산절차가 진행되지 않거나 채무자가 면책을 받지 못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전세계에 대하여 지급불능의 선언을 한 채무자가 개심하여 예전의 부채를 갚겠다고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제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투입하는 전화료, 우편료, 그리고 텔레마케터의 인건비를 감당할 정도의 수확을 기대하기 힘들다. 개인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것은 금융기관은 해당 채권을 상각(write-off)할 사유가 된다. 법률상으로는 권리이지만 회계장부상의 자산가치를 소거하는 것이다. 채무자가 면책되면 그나마 법률적 권리도 폐기해 버린다. 면책을 받지 못하더라도 금융기관은 채권을 이를 전문적으로 사 모으는 대부업체에 매각해 버린다. 대부업체는 대부분의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지만, 일부 채권이라도 회수하면 이득을 얻는다. 경우에 따라 채무자와 적당한 가격에 협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파산이 선고되면, 그 이전의 원인으로 인하여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은 파산채권으로 분류되고, 파산채권은 오로지 파산절차에 의하여 행사할 수 있다. 제423조, 제424조. 파산절차에서 개별 채권자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이미 파산채권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한 경우가 있다. 그 자체가 소송절차를 중단할 사유는 아니다. 그러나, 파산절차에서 채권조사가 행하여지는 경우, 파산채권의 존재와 범위에 관하여 이의가 제기되지 않으면(대부분 그러하다) 소송은 지속할 이익이 없다. 또 채무자가 면책되면 판결을 내릴 이익이 없다. 실무상 민사소송을 하는 법원은 채권조사 여부, 면책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소송을 결과 얻은 판결 등으로 채권을 강제집행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미 행하여진 강제집행과 가압류, 가처분은 파산재단에 대하여는 그 효력을 잃는다. 파산관재인은 강제집행을 무시할 수도 있고, 속행할 수도 있다. 그 결과 파산채권자에게 배당되었을 금액은 파산관재인이 받아간다. 제348조 제1항. 모든 채권자가 소송과 강제집행을 통하여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상황을 하나의 절차로 축약한 것이 파산절차이기 때문이다.
다만, 파산절차는 이미 채권자에게 귀속된 권리를 침해하지는 못한다. 파산절차 그 자체는 채무자의 재산을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는다. 소송과 강제집행과 구별하여야 할 것으로 저당권, 전세권, 질권, 가등기 같은 담보권의 실행이 있다. 이것은 재산권을 담보 설정 당시 이미 양도한 것으로 관념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담보권을 실행하기 위하여 경매를 하는 것은 채권자가 자기 재산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강제집행과 구별하여 “임의”경매라고 한다. 파산절차에서는 이렇게 담보를 실행할 권리를 “별제권”이라고 한다. 제411조. 별제권은 파산절차와 상관 없이 직접 행사한다. 제422조. 제3자의 소유에 속하는 물건은 소유자가 회수할 수 있다. 제407조. 이를 환취권이라고 한다. 별제권은 환취권의 질적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별제권의 행사로 변제를 받을 수 없는 채권액에 관하여만 파산채권자가 된다. 별제권을 포기한 때에도 같다. 제412조.
면책을 받으면 파산절차에 의한 배당을 제외하고는 채무자는 파산채권자에 대한 채무의 전부에 관하여 그 책임을 면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청구권은 면책에서 제외된다. 파산절차를 투과한다. 제566조.
1. 조세
2. 벌금ㆍ과료ㆍ형사소송비용ㆍ추징금 및 과태료
3.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4.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
5. 채무자의 근로자의 임금ㆍ퇴직금 및 재해보상금
6. 채무자의 근로자의 임치금 및 신원보증금
7. 채무자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한 청구권. 다만, 채권자가 파산선고가 있음을 안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8. 채무자가 양육자 또는 부양의무자로서 부담하여야 하는 비용
위 1호, 5호, 6호, 8호는 재단채권에 해당한다. 제473조 제2호, 제9호, 제10호, 제11호. 파산채권에 우선하여 변제한다. 제476조. 2호의 채권은 다른 파산채권보다 후순위로 변제한다. 제446조. 나머지 채권은 다른 파산채권과 같은 순위에서 배당 받는다. 그리고 파산절차에서 변제, 배당 받지 못한 부분은 채무자의 면책 이후에도 행사할 수 있다.
파산절차를 투과하는 것은 단순히 채무가 잔존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다른 파산채권은 모두 효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채무자가 갚을 채무는 줄었다. 채무자는 갚을 가능성이 커진다. 채권자에게는 경제적 이득이 발생한다. 정책적 이유에서 또 채무자의 동기를 왜곡하지 않으려는 고려에서 인정되는 것이다.
다만, 7호의 규정취지는 약간 다르다. 파산절차 진행을 알지 못한 채권자가 배당을 받지 못한 것을 보상하는 것일 수도 있고, 파산채권자의 면책에 대한 이의를 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채무자를 제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채무자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서 누락한 채권자는 그가 파산절차의 진행을 알지 못한 경우 파산절차에 참여하였더라면 누리지 못할 특권을 누리는 셈이니 일종의 횡재(windfall)이다. 채무자의 허위진술로 인하여 면책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박탈 당한 채권자 보호가 필요함을 근거로 채무자의 선의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을 포함한 판례가 있었다. 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다49083 판결. 고의로 누락한 것이 분명한 것임에도 하급심이 사실을 잘못 인정한 사안이었다. 그 후 하급심 법원에서는 채무자가 특정 채권의 존재를 알 수 있었던 경우까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지배하였다. 파산절차 이전에 채무자에 대하여 실시된 채권압류 등 강제집행을 면책에 의하여 실효되었음을 이유로 해제할 때에도 파산절차에서의 채권자목록을 요구하는 것이 일부 집행법원의 실무이다. 채권자들이 고의로 어떤 경우에는 채무자에게 자신을 채권자목록에 누락시키도록 압박하면서까지 파산절차에 참여하지 않을 인센티브를 늘리고 현실적인 문제로서 파산절차가 지난 후 한참 뒤에 민사소송이 늘어나는 효과를 늘린다. 이것은 서울회생법원이 파산을 다시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실무를 변경함으로써 많이 해결되었다. 최근에는 대법원도 누락된 파산채권에서 악의를 인정하는 범위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면책은 파산절차의 개시에 의하여 발생한 일시적인 권리행사 중지 상태가 영구적인 금지명령으로 변경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면책된 채권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하는 것이 실무이다. 채권자가 제기한 소송에 면책의 항변을 할 수 있다. 채권자명부에 누락되었지만 면책의 효력이 미친다고 주장하는 채무자는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금융규제상으로, 채무불이행의 신용정보는 삭제되며, 대신에 면책을 받은 사실의 기록이 5년간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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