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영향
파산절차는 채무자에게 있어서 아주 큰 결단이다. 당연히, 파산절차로 진입할 것을 고려하는 채무자는 걱정이 많다. 그 걱정 중 하나는 앞에서 본 것 이외에도,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민사법에서, 채무자의 파산은 가족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적어도 규범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채무자의 파산은 가족에게 다종다양하게, 약간 또는 강하게 영향을 준다. 이전에 경제활동을 공유하였던 것이 근원이 되어, 가족에게는 파산절차의 진행에 있어서 사실상 어떤 경우에는 법률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파산절차에서 면책을 얻은 가장이 다시 부양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작아 보일 정도로, 채무자의 걱정은 크다.
인류 문명에서 가족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혼인이라는 결합은 배우자의 상대방에 대한 충성과 부양을 요구한다. 또 부모는 자녀를 부양하고 교육한다. 결합이 유지되는 한, 경제적으로 공동체로 간주되고, 과세의 단위가 되기도 한다.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에서 “세대”라는 단위를 주택 보유의 기준으로 삼는다. 경제학에서는 “가계”라고 표현한다. 일상의 가정생활에서 소비지출은 그렇게 가계를 단위로 이루어지고 누가 지출하는 지, 누가 법률상의 채무를 부담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비지출은 순간순간 일어나고 그때마다 결제되는 것으로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도 부부 사이에서 일상가사대리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민법 제827조 제1항은 부부는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서로 대리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이 대리권의 제한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832조에 의하면 일상의 가사에 관한 거래에 관하여 부부는 연대책임을 진다.
신용거래는 그렇지 않다. 소액이고 곧 결제될 것이 예정된 것이 아닌 한, 그것은 일상의 가사가 아니다. 어떠한 사유로든 그 범위를 넘어 지인들 사이에 금전 신용거래가 일어나는 수도 있다. 가계가 부채를 누적하는 과정에서, 자녀는 오랜 과외교습을 거쳐 의과대학이나 로스쿨을 졸업했을 수 있다. 미국의 사립학교를 거쳐 대학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가장에게 또는 주부에게 돈을 빌려 준 채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돈이 자녀들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으로 변환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대신 부모의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딱 떨어지는 민사법적인 근거가 없다. 전문직인 아내가 생활비를 분담하고 친정을 지원하느라 대출을 받아 부채를 누적하는 사이에 남편은 아내의 부채를 초과하는 재산을 늘렸을 수도 있다. 이 때 남편에게 아내의 부채를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법적 기초를 결한다. 공동체 내부로 민사법이 침투하기는 어렵다.
파산으로 이끌어갈 지급불능 상황을 예상하는 채무자는 마지막 남은 재산을 채권자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넘기고 싶다. 흔히 ‘돌려놓는다’는 말을 쓴다. 법률용어로는 ‘사해행위’라고 한다. 그 거래상대방은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가족, 친족이다. 한편, 채무자의 상태가 악화하기 시작하면서 금융기관이나 거래처가 대환이나 추가대출, 외상거래를 거절할 수 있다. 이 때 가족에게서 빌려오는 것은 채무자가 가족이 아닌 다른 채권자에게 빚을 갚으면서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려운 때에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하지 않던가. 가족은 가장 좋은 친구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이다. 나름이기는 하다. 법률상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매력의 실행과 경제적 부양과 지원을 나누던 남녀 관계는 스폰서 역할을 하는 자가 재력을 잃으면 금방 청산된다. 어쨌든, 마지막 남은 돈으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진 빚을 먼저 갚는 것은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다른 채권자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사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법률용어로는 ‘편파행위’라고 한다.
이러한 사해행위나 편파행위는 가족에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파산절차에 들어간 채무자가 과거 가족과의 거래 및 가족의 재산 상황을 조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사법상 불가피한 조사일 것이다. 법률의 어디에도 파산에 이른 채무자가 가족과 행한 거래나 가족의 재산상황을 조사한다는 규정은 없다. 어디까지나 채무자의 거래나 재산 상황의 조사인 것이다. 다만, 규범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채권자의 희생 하에 채무자의 가족이 평안한 것을 질타하는 채권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파산절차 담당자들도 있다. 그들은 가계, 세대, 가족 단위의 경제적 관찰을 관철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가족에 대한 사해행위나 편파행위가 드러날 수 있다. 이 경우 재산을 채권자에게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파산절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사해행위나 편파행위 때문이다.
미성년의 자녀가 부모의 파산을 알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채무자도 있다. 아이에게 뒷받침을 해 주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은 부모가 내색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 안다. 채권 추심인들의 연락에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이도 “우리 엄마 없어요”라고 답하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의 파산법 교수를 역임하고 상원의원이 된 엘리자베스 워런의 “싸울 기회”라는 책은 “나는 내가 철 든 날을 기억한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반듯이 잘 크는 경우가 많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의 교육과 취업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안전망이 어느 정도 충분히 갖추어진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부모의 파산으로 자녀의 인생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