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은 범죄인가
우리 법에서 형식적으로는 파산 그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파산법 원류를 형성한 나라에서도 초기에는 그러했다. 영국의 헨리 8세 시절 파산을 범한 자를 다스리는 1542년의 법(the 1542 Act Against Such Persons As Do Make Bankrupts)이 제정되었다. 16세기초부터 상업과 신용거래가 급증하였다고 한다. 실패하는 것은 일상인 것이고.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채무를 피하고 싶어 한다. 야반도주, 재산은닉은 기본이고, 당시의 민사법으로는 가족이나 친족, 친지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행위를 개별 채권자가 어쩌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파산자로 지목되면 체포 및 구금이 가능했다. 도주하거나 재산을 은닉하거나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사실상 무기한 구금할 수 있었다. 범죄는 아니었다. 그러나, 재산을 전면적으로 박탈하고 신분과 신용을 상실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구금할 수 있었다. 사회적 죽음이었다.
영국이 제국으로 번영하던 19세기에도 채무자감옥(debtors’ prison)이라는 것이 있었다. 빚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는 채무자를 감옥에 보낼 수 있었다. 감옥 안에서 채무자는 노역을 강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세와 식비, 의류, 침구 모두 수용자 부담이었다. 옥바라지를 해 주는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채무자는 생존이 힘들었다. 실제로 많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의 아버지도 생활비, 교제비 등 소비습관으로 누적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감옥에 들어가고 디킨스는 12세부터 공장에서 노동을 했다. 어린 시절의 이 경험은 디킨스의 작품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밖에 채무자감옥의 일화는 많다. 윌리엄 펜은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 창립자이자 종교자유를 옹호한 사람이다. 직원의 사기가 계기가 되어 62세에 채무자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고 한다. 로빈슨 크루소를 지은 대니엘 데포는 1692년에 140명의 채권자에게 700파운드를 빚진 일로 체포되었고 총 채무는 17,000파운드에 달하여 파산하였다고 한다.
로버트 모리스는 미국 독립선언, 연합헌장, 연방헌법 모두에 서명한 2인 중 1인이다. 독립전쟁 중 재무총감을 지내고 독립 후 초대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하였다.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닥친 불경기 하에서 부동산투자가 잘못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투자는 위험하다. 3년 6월을 채무자감옥에서 보낸 후 의회가 처음으로 1800년 파산법을 제정한 후인 1801년에 석방되었다. 파산절차 종료 후에 채권자 3분의 2가 동의하여 면책되었다. 제임스 윌슨도 독립선언과 연방헌법에 모두 서명한 6인 중 한 사람이고 초대 연방 대법관이자 법학 교수였다. 1796년의 부동산버블 붕괴 와중에 빚을 갚지 못하고 현직 대법관임에도 두 차례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었다.
영국, 미국 뿐이랴.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도 서점, 출판업 등에 손을 대서 망하여 평생 빚에 시달리며 살았다. 파리에 남아 있는 발자크의 집은 경사로에 지어져 2층에도 1층에도 출입문이 있다. 채권자들이 발자크를 붙잡아 구금하려고 집행관을 데리고 오면 멀리서 보다가 다른 출입문으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실패하여 구금되었다가 귀족의 부인인 연인들 중 한 사람이 빚을 대신 갚아 주고 감옥에서 꺼내기도 했단다.
영국에서는 1869년 파산법(Debtors Act)를 통하여 단순한 채무불이행만으로는 채무자를 구금할 수 없도록 하였다. 구금되는 건수는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법률이 변경되어도 과거의 관행은 당분간 지속되게 마련이다. 사기를 범한 경우 등 여러 사정으로 처벌하는 방식으로 처벌은 존속하였다고 한다.
역사는 두부 자르듯이 단계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 실패한 채무자에 대한 처우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며 서서히 변화해 왔다. 그렇게 채무자감옥은 19세기를 지나면서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점차 사라졌다. 채무자에게 관대한 파산제도의 정립과 전세계적인 확산에는 더 시간이 걸렸다. 서유럽과 영국, 미국 내에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앞서 나가고 뒤처진 곳이 있었다.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동양 사회의 경우 최근까지 변화가 느렸고, 급격한 전환에 대하여는 저항이 있다.
짧은 시기에 우리나라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왕조가 망하고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단기간 내에 서양법을 수용하였다. 공화국 형성 이후 전쟁과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세계화의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다. 압축적으로 서양인들이 여러 세기 동안 겪은 법과 실무의 발전을 겪고 있다. 방향은 비슷하지만 어떤 부분의 발전은 세계를 선도하고, 다른 어떤 부분은 늦다. 서양에서 채무자감옥이 천천히 철폐되었듯이, 그 요소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형사실무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그것은 채무자가 돈을 빌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신용을 얻을 때 채권자를 속였다고 법원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변제 자력의 기망, 용도의 기망이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나 빌린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 지는 동기의 착오이다. 한국의 채권자들에게는 이러한 동기를 심사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가정된다. 채무자가 돈을 빌릴 당시 부채가 더 많았다던가, 현금이 유출되는 상황 모두 장차 지급불능을 예상할 수 있으므로 사기의 고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면 거의 모두 사기는 성립한다. 사용하는 용도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는 지 아닌 지는 채권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궁하지 않은데 돈을 빌리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인가. 진실한 용도를 알리고 돈을 빌리는 사람이 나중에 지급불능이 될 경우가 있을까. 결국 대부분의 금융채무자는 사기죄를 범한 것이 된다. 처벌 받을 지 여부는 채권자가 피해자로서 채무자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하는 지 여부에 의존한다. 실질적으로는 채무자감옥이 존재하는 셈이다.
채권자계급이 제도화된 금융기관들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심사를 신용평가와 객관적인 증빙에 의존한다. 그들이 채무자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은 원시적인 수단이다. 오래 전에 신용카드 대금을 갚지 못한 것을 일반적으로 사기죄로 처벌한 적이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 받아 감옥과 경찰서가 신용카드회사의 고소사건으로 넘치게 되자 경찰이 신용카드 회사의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면서 사태가 끝난 일이 있었다. 일부 대부업체는 채무자가 용도를 선언하기 위하여 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하는 것을 못 본 체하기도 한다. 고대에는 돈을 빌려 주는 사람이 돈을 둔 채 자리를 비워 채무자가 들고 가도록 방임하여 채무자가 돌려주지 않으면 이를 절도죄로 처벌하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는데 그와 비슷하다.
물론 채무자가 연체하는 경우 채권자가 바로 고소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직 받을 희망이 있는 한 기다린다. 빚을 갚지 않으면 감옥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채무자에게 큰 심리적 압박이 된다. 간접강제라고 한다. 직접 채무자의 재산이 없어도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마련해 오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채무자가 파산을 선언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전세계에 대한 지급거절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채권자와 합의를 하여야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압박수단이 필요하다. 확실히 파산은 형사고소를 촉발하는 면이 있다. 많은 채무자가 형사처벌이 두려워 파산절차에 의한 보호를 주저한다. 어떤 채무자는 형사고소를 할 가능성이 많은 채권자를 절차에서 제외하려고 한다. 이것은 주로 면책의 효력과 관련하여 문제를 야기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심리적 압박을 극복하고 모든 채권자를 절차에 포함시키는 채무자도 있다. 절차 진행 중에 따로 변제하고 합의하기도 한다.
다행히 현대 한국의 “채무자감옥”의 현실은 암담하지 않다. 재판이 확정되기 전 미결수들은 무죄 추정 하에 수용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의식주 모두 관급이다. 징역을 살아도 끝이 있다. 형을 살고 나온 사람이 “학교 다녀왔다”고 너스레 떠는 이야기하는 예가 있다. 아무래도 자유의 박탈은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나름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마르코 폴로도 빚을 못 갚아 감옥에 갇혔을 때 여행기를 구술하였다고 한다. 구치소 다녀온 어떤 사람이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1) 경호원이 철저히 지켜 준다. 자살도 못하게 한다. (2) 탔다 하면 관용차다. (3) 만났다 하면, 판사, 검사이다. (4) 맑은 공기 쏘이고, 기름 설탕 소금 덜 들은 건강식을 먹는다. (5)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하며 술, 담배 안한다. 몸 만들기 좋다. (6) 고소인들이 이제는 괴롭히지 않는다. 채무자감옥의 잔존이라는 면에서는 약간 발전이 더딘 듯해도 다른 한편으로 압축적으로 발전을 이루었다. 결국은 채무자감옥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에, 그것을 유지하는 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깨달을 때 사기죄 실무는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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