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과 자격제한

파산과 자격제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편 중 제8장 제2절은 복권(復權)에 대한 것이다. 제574조는 당연히 채무자가 복권되는 사유를 늘어놓는다. 첫째, 면책의 결정이 확정된 때이다. 둘째, 원칙적으로 신고한 파산채권자 전원의 동의 하에 파산폐지의 재판이 확정된 때이다. 폐지라고 함은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니 파산절차 자체가 없었던 것이니 면책된 것에 준하여 취급할 수 있다. 셋째, 채무자가 사기파산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음이 없이 파산선고 후 10년이 경과한 때이다. 복권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는 불이익을 줄 수는 없으니 그 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하다. 망각의 미덕은 확실히 존재한다. 제575조에 의하면, 당연히 복권이 되지 않은 채무자라도 파산채권자에 대한 채무의 전부에 관하여 책임을 면한 때에는 복권을 신청할 수 있다.

파산을 하나의 범죄로 간주하던 시절로부터의 유산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복권되는 것일까? 무슨 자격을 박탈하기에 복권이라는 제도를 둔 것인 지 막상 파산제도를 규정한 법률은 아무것도 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 규정은 다른 법에 있다. 공무원이나 자격증을 요구하는 직업에 대하여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임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런 규정은 수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있다. “결격사유”라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2호, 지방공무원법 제31조 제2호, 군인사법 제10조 제2항 제3호, 교육공무원법 제10조의 4 제1호, 사립학교법 제52조, 변호사법 제5조 제9항, 공인회계사법 제4조 제5호, 공인중개사법 제10조 제1항 제3호.

그러다 보니 자발적 결사에서도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배제하는 규정을 답습한다. 공기업이나 민간 회사의 정관과 취업규칙은 물론이고, 공동주택관리규약과 심지어는 동창회나 종중 같은 단체의 정관과 규약에도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배제하는 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식당에서 MSG 치듯이 두루두루 써먹는다.

선거를 거쳐 취임하는 정치인에 대하여는 이러한 자격 제한 규정이 없다. 하위직의 공무원은 파산 선고로 직을 잃을 위험이 있지만 국회의원은 그렇지 않다. 의료인도 면허를 잃지 않는다. 의료법이 법률 제8366호로 개정되어 2017. 4. 11. 시행되었다. 그 전의 의료법 제8조 제1항은 제4호에서 “금치산자ㆍ한정치산자ㆍ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의료인이 될 수 없는 자로 명시하였다. 개정된 법은 제3호에서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삭제하였다. 그 이전에 대법원은 여기에서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는 파산선고 후 복권될 때까지 파산자의 상태에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고, ‘파산선고가 확정되고 면책결정이 내려지지 아니할 것으로 확정된 자’로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적이 있다. 대법원 2001. 10. 12.선고, 2001두274 판결. 이 판례에 의하면 파산의 선고를 받은 자는 불가역적으로 자격을 상실한다. 그 후 면책을 받아도 자격이 당연히 회복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당연히 입법을 하는 자들이니 그럴 것이다. 의료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작지 않다.

법은 개정이나 폐지와 같이 명시적, 의식적 과정을 거쳐 변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개정이나 폐지 없이도 관행과 실무를 통하여 변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자는 당연퇴직한다는 인사규정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06. 7. 14. 선고, 2006가합17954 판결. 그 무렵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개인에게 파산선고를 내린 사실을 채무자의 본적지나 관공서에 통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산선고를 받더라도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또는 채권자가 보복을 위하여 직장이나 자격사 협회, 관공서에 알리지 않는 한 법률상 퇴직이나 자격상실이라는 효과는 감추어진 채 어영부영 넘어갔다. 파산을 신청하는 채무자 대부분이 면책을 받는다면, 이렇게 파산의 선고로 공무원에서 면직되거나 전문직업인의 자격이 상실되었다가 면책이 되면서 다시 복권이 되고, 그 후 다시 임용되거나 자격 등록을 다시 하는 방식은 번거롭다. 본적지 통보를 생략하는 법원의 관행이 법의 변천을 이룬 것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한편, 2008년부터 신분을 공시하는 호적 제도가 폐지되면서 일종의 신분인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을 등록기준지(과거의 본적지) 관서가 기록할 근거도 사라졌다. 다만 신용정보의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한번 이루어진 법의 변천은 그 후의 입법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파산선고로 인하여 공무원이 당연히 퇴직한다는 규정이 법률 제13288호로 개정되어 2015. 11. 19.부터 시행된 변했다. 국가공무원법 제69조는 제33조 제2호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여 당연히 퇴직할 요건이 발생하더라도,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으로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청기한 내에 면책신청을 하지 아니하였거나 면책불허가 결정 또는 면책 취소가 확정된 경우만 해당”한다는 제한을 부가하였다. 이에 따르면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을 받지 못할 때에만 퇴직한다는 것이다. 같은 날 지방공무원법도 같은 취지로 개정되었다. 군인사법, 교육공무원법은 아직 그대로이다.

위 개정에 의하여 파산선고를 받는 즉시 퇴직한다는 가혹함은 완화되었지만, 면책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퇴직한다는 자격제한은 여전히 남아 있다. 면책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파산절차에 의한 보호를 주저하게 하는 아주 강력한 억지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자격제한의 정도가 법령마다 다르다. 민간의 규칙이 무효라고 장차 법원이 선언할 가능성도 알 수 없다. 채무자로서는 파산은 현재의 직위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이와 반대로, 미국은 파산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연방 파산법 제525조에 의하면,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및 그 하부 기관은 파산신청, 파산선고, 채무의 면책을 이유로 허가를 거부하거나 취소, 정지하거나 차별적 조건을 부과하거나 고용을 거부하지 못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공무원이 파산으로 직을 면하지는 않는다. 다종다양한 자격증이 있는 직업과 관련하여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배제하는 규정이 형식상 남아 있지만 실제로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파산에 이른 자를 취급하는 각 법령은 제각기 규제하는 영역이 다르고 담당 부서도 다르다. 또한 그 규제를 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통일적 취급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또 자격제한에 관한 법령을 철폐한다고 한 들, 전해 내려오는 신성한 족보처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규정집에 기재된 표준서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연방파산법처럼 파산을 이유로 정부가 차별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채무자, 나아가 파산자라는 계급으로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문제와 관련한 혼란을 제거하기 위하여는 차라리, 파산제도의 운영을 다루는 법률에서 복권 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을 받지 못한 자”는 파산선고를 받은 자 모두를 뜻하는 것보다는, 조문이 인용하는 대상을 찾지 못하여 일반적으로 효력을 잃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이 2006년 시행될 때부터 제32조의 2가 추가되어 있다. 차별적 취급의 금지라는 제하에,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회생절차ㆍ파산절차 또는 개인회생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의 제한 또는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실무가들이 활용할만큼 구체적인 규범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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