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이나 대부업 쪽에서 가끔 나오는 비판이 있다. 빚을 탕감해 준다면 도대체 누가 빚을 갚으려고 하겠는가. 너도 나도 빚을 갚지 않고 파산을 신청하면 금융거래는 무너지고 신용사회는 붕괴한다.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나.
그런데 파산제도가 잘 운영되는 사회에서 금융도 활발하다. 미국이 그 전형이겠다. 따라서 파산제도가 운영된다고 금융의 기반이 망가진다는 주장은 정당한 비판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우선 채무자들에게는 파산제도를 기꺼이 이용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첫째, 돈을 갚지 않은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가 된다. 아무리 자유롭게 부채를 면해 준다고 한들, 그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다. 도덕심, 명예심, 자존감에 호소하는 것은 추심인들이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이다. 둘째, 파산이 주는 낙인효과이다. 연체하는 것은 채무자의 신용을 훼손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들은 거의 모든 사람에 관한 자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 자료를 가공하여 신용정보를 생산한다. 또 계량적으로 평가하여 사람별로 신용등급 또는 신용점수를 매긴다. 채권자와 및 잠재적 채권자들은 돈을 주고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자료를 받는다. 그들은 대출을 할 때, 직원을 채용할 때, 상거래를 시작할 때 이 신용정보를 참고한다. 금융산업의 경우는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연체가 지속되는 것, 파산절차로 진입하는 것 모두 신용점수를 낮춘다. 더 이상의 대출을 거절 당하는 것은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악몽이다. 따라서 웬만한 채무자는 빚을 성실하게 갚을 인센티브가 있다고 가장할 수 있다. 셋째, 파산절차에서 면책을 받기 위하여 채무자는 자기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내놓아야 한다. 이것을 감춘다면 파산범죄로 처발 받는다. 당연히 면책을 받지 못한다. 포기하지 않을만한 편익을 주는 재산이 있는 채무자라면, 파산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현상고정을 선택할 인센티브가 있다. 재산을 처분히여부채를 갚고 생활비에 충당하며 의미 있는 재산이 없을 때까지 버틴다. 대부분의 파산 사건에서 채권자에 대한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채무자들이 웬만하면 끝까지 버틴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채무자가 무리를 해서 빚을 갚으려고 매달린다. 인지부조화를 회피하려는 심리적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실패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객관화는 어렵다. 위와 같은 심성을 가지지 않은 자에게 금융산업에서 선뜻 대출을 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폭력과 사기에 굴복하거나 그리고 정치경제학의 탐구영역에 속하는 거래일 것이다.
위와 같은 심리적 장애를 극복한 채무자는 나름대로 고민하기도 하고 전문가 상담도 받는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파산절차에 호소하기를 결정하는 과정은 느리다. 채무자의 회생이 사회의 유지에 중요하디는 공익적 기능에 대한 막연한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파산은 장기적으로 채무자의 신용을 개선한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연체된 채무가 거의 소거된 상태라면 그에게 새로운 조건으로 대출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에게 소액의 대출을 하는 대부업체도 번성하는 상황은 이를 상징한다. 그렇게 신용이 다시 쌓이면서 채무자는 다시 신용사회로 복귀할 기회를 부여 받는다. 파산은 가계가 다시 빚을 질 수 있도록 기존의 빚을 청산하는 기능을 한다. 금융산업의 생태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이유로 파산절차 진입에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는 차별적 제도와 관행이 우리 사회에는 남아 있다. 자격정지와 가족에 대한 압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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